[노주현 사회칼럼] 자립 준비 청년 ... 자립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 '편견'을 부수는 사람들, 이성남 장학사

노주현 칼럼리스트 기자 발행일 2026-06-10 07:40:18 댓글 0
지난 회까지 우리는 편견의 정체를 들여다보았다. 한 아이를 핏줄과 기질이라는 두 단어로 재단하는 일이 얼마나 게으르고 무지한 판단인지, 그리고 그렇게 켜켜이 쌓아 올린 편견의 성벽이 얼마나 단단하고 높은지를 확인했다. 

누군가는 그 성벽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누군가는 그 그늘에 갇혀 평생을 보낸다. 그러나 성벽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 구조물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벽은 어디선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허물어지고 있다. 망치를 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거창한 구호 대신 자기 삶 전체를 증거로 내밀어, ‘고아였으니 마땅히 그러할 것’이라는 통념을 한 장면 한 장면 지워 나간다. 이번 회와 다음 회에 걸쳐, 그 벽을 부수는 두 사람을 차례로 만나려 한다. 


첫 번째 사람은 자신의 결핍과 편견을 끝내 에너지로 바꾸어 낸 이성남 장학사다.

▲ 이성남 장학사, 경상북도김천교육지원청


편견과 결핍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사람. 

이성남 장학사의 삶은 한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버려진 아이가 교육자가 되어, 다시 보육원 아이들의 곁으로 돌아간 이야기. 그는 다섯 살 무렵, 한 살 어린 동생과 함께 구멍가게 앞에 버려졌다.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경북 김천의 한 보육원에 맡겨졌고, 그곳에서 스무 해 남짓을 자랐다.  보육원은 먹고 자는 공간이기 이전에 생존의 터전이었고, 동시에 결핍과 상처를 가장 먼저 배운 자리였다. 

굶주림과 엄격한 규칙, 폭력과 외로움, 그리고 따가운 편견이 어린 그의 일상을 차례로 통과해 갔다. 그러나 그는 자기 삶을 불행한 고아의 이야기로만 흘려보내지 않았다.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남들보다 두 배는 더 애써야 한다고 믿었고, 공부와 체육을 디딤돌 삼아 자신을 스스로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노력한 끝에 스물다섯이 되던 2002년, 마침내 공립학교 교사로 채용된다.  버려진 아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거듭나는, 그의 첫 번째 전환점이었다.


교단에 서다, 그리고 돌아가다.

다만 교단에 선 뒤에도 그는 한동안 자신의 출신을 드러내지 못했다. 보육원 출신이라는 사실은 오래도록 그를 짓누른 콤플렉스였다. 

교직 9년째 되던 해, 그는 고향 김천의 한 중학교로 자리를 옮겼고 그곳에서 한 보육원 아동의 담임을 맡았다. 주눅 든 그 아이의 얼굴에서 지난날 자기 모습을 또렷이 본 순간, 마음이 무너졌다. 

“내가 돕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날의 다짐 이후, 그는 부임하는 학교마다 시설 출신 아이들을 만나면 밥을 사 주고 조용히 곁을 지키며 후배들을 보살피기 시작했다.

이 장면은 그의 삶에서 각별한 무게를 지닌다. 

그는 성공한 뒤 과거를 끊어 낸 사람이 아니라, 성공한 뒤 다시 과거의 자리로 돌아간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기 안의 상처는 다른 아이의 상처를 알아보는 눈이 되었고, 자신의 결핍은 후배들을 이해하는 언어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보육원 출신으로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그 경험을 교육자의 사명으로 빚어낸 사람이다. 운동장이라는 안식처, 체육이라는 언어. 그의 본업은 체육 교사다. 

그는 약 20년간 중학교 교단에서 학생들의 몸과 마음을 함께 일으켜 세우는 교육을 펼쳤다. 전교 1등부터 꼴찌까지, 다문화 학생과 탈북 학생, 특수반 학생까지, 가정환경이나 성적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아이를 품으려 했다. 

환경이 아무리 힘겨운 학생이라도 교사가 건네는 한마디에 용기를 얻어 삶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체육은 한낱 과목이 아니었다. 몸을 움직이는 일은 아이들에게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아 주는 도구였고, 함께 뛰는 운동장은 아이들이 소속감을 느끼는 안식처였다. 

그는 체육수업 자료를 직접 개발하고 뉴스포츠‘투투볼’의 보급에도 힘을 보탰으며, 그 공로로 2017년 ‘학교체육 대상’을, 2021년에는 대한민국 스승 상에 선정되어 ‘옥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세상 앞에 출신을 꺼내다.

두 번째 전환점은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 앞에 꺼내놓은 시기에 찾아왔다.  고아권익연대에 참여하며 스스로 출신을 밝힌 그는, 2020년 《나는 행복한 고아입니다》를 펴낸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자서전에 머물지 않았다. 

고아의 아픔과 현실을 전하는 데서 나아가, 보육원 출신 아이들을 위한 제도적 울타리와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함께 제안하는 목소리였다.

그가 “나는 행복한 고아입니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자기 삶이 순탄했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가 고아에게 덧씌운 불행의 그림자를 거부하는 선언에 가깝다. 

고아였으니 마땅히 불행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부모의 울타리 없이 자란 사람도 가정을 이루고 교사가 되고 장학사가 되며 마침내 누군가의 든든한 어른이 될 수 있음을, 그는 자기 삶으로 증명하려 했다.

이후 펴낸 《행복한 고아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서는 문제의식의 지평을 한층 넓혔다. 

“고아라는 이름이 약점이 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서”라는 이 책의 문구처럼, 그는 분명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사회의 시선과 편견에 가려 그늘 속으로 숨어드는 아이들을 향한 편견에 정면으로 맞섰고, 울타리 없이 살아온 이들에게 따뜻한 조언과 응원을 건넸다.


동정이 아니라 권리 '함께 키우는 아이'

그가 전하려는 핵심은 분명하다.  아이가 부모와 단절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나야 할 까닭은 없다는 것. 

그는 학생들이“나는 보육원 출신입니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었고, 고아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키우는 아이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 한마디에 그의 세계관이 응축되어 있다. 

그는 고아를 가엾은 존재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아이이자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한 한 사람의 시민으로 바라본다. 그의 활동이 동정이 아니라 인식의 개선에, 시혜가 아니라 권리의 회복에 닿아 있는 까닭이다.

그는 한국고아사랑협회를 설립해 보육원 퇴소인을 돕는 일에도 발 벗고 나섰다. 

보육원을 퇴소한 청년들에게는 서로 기댈 네트워크도, 주거와 취업을 받쳐 줄 기반도 모두 위태롭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 홀로 끌어안았던 고민을 후배들이 똑같이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를 이 길로 이끌었다. 유튜브 ‘나행고TV’를 운영하며 인식 개선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도 같은 마음에서다. 

보육원 아동과 퇴소 청년의 삶을 편견 없이 정확하게 바라봐야만 비로소 올바른 아동복지 정책이 세워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2024년, 그의 삶은 「나는 꿈을 이룬 고아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다시 한번 조명받았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평범한 하루하루가 꿈만 같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좇아온 성공이 거창한 명예에 있지 않았음을 잔잔히 보여 준다. 

그에게 꿈이란 평범한 가정,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 그리고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선생님으로 사는 삶이다. 

2025년 한 강연에서 어린 시절의 시련을 딛고 삶을 긍정의 빛으로 돌려세운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 것도, 결국 그 평범한 행복의 소중함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성공보다 ‘환원’이라는 단어

결국 이성남 장학사의 일대기는 결핍과 편견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결코 그 결핍과 편견에 갇히지 않은 한 사람의 기록이다. 그는 버려졌고, 외로웠으며, 차별을 견뎌야 했다. 

그러나 그 상처를 숨기는 대신 교육의 언어와 감사의 언어로 다시 빚어냈고, 부끄러운 약점으로 묻어두는 대신 후배 아이들이 같은 이름 때문에 주눅 들지 않도록 기꺼이 자기 삶을 열어 보였다.

그래서 그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단어는‘성공’보다 ‘회복’, ‘극복’보다 ‘환원’, ‘개인의 서사’보다 ‘공동체의 책임’이다. 

그는 홀로 잘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 도움과 견뎌 낸 아픔을 다시 아이들에게 되돌려주는 사람이다. 

버려진 아이가 꿈을 이룬 이야기이자, 꿈을 이룬 어른이 다시 버려진 아이들 곁으로 돌아간 이야기. 그것이 이성남 장학사의 삶이다. 

그가 부순 것은 한 사람의 편견이 아니라, 편견이 작동하는 방식 그 자체였다. 

한 아이의 미래를 핏줄로 점치던 자리에, 그는 ‘함께 키우면 달라진다’라는 명백한 증거 하나를 세워 두었다. 

다음 회에서는 같은 성벽을 전혀 다른 망치로 부수는 한 사람을 만난다. 

교육의 언어가 아니라 일자리와 구조의 언어로 편견에 맞선 사람, 브라더스키퍼의 김성민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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