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시대, 이제는 '확장'이 아닌 '스마트 축소'를 말할 때
비수도권의 많은 도시를 찾다 보면 낯익은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낡은 골목은 형형색색의 벽화로 새 단장을 했고, 현대적인 외관의 창업지원센터와 문화시설, 도시재생 거점시설이 들어서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도시가 다시 살아난 듯하다.하지만 평일 오후 거리를 걸어보면 현실은 전혀 다르다. 새 건물 주변에는 사람이 거의 없고, 문을 닫은 상점과 빈 점포가 곳곳에 남아 있다. 사람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 공간은 많지만, 정작 그 공간을 채우고 지역경제를 움직일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전국의 쇠퇴 도시를 둘러보며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이 장면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도시재생사업은 과연 도시를 되살리고 있는가.그동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소멸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수십조 원 규모의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해 왔다. 노후 주거지를 정비하고 문화공간을 만들며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는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현실에서는 이러한 접근이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문제의 핵심은 인구 감소 시대에는 과거와 같은 성장 논리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경제 성장기에는 도로와 기반시설을 정비하면 외부의 인구와 기업이 자연스럽게 유입됐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 전체의 인구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특정 지방도시를 아무리 아름답게 꾸민다고 해서 수도권 인구가 대규모로 이동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결국 새롭게 조성된 도시재생 구역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은 인근 지역 주민이거나 같은 생활권 안에서 이동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지역이 살아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지역이 더 빨리 쇠퇴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지방 전체의 관점에서는 새로운 인구가 생긴 것이 아니라 기존 인구가 이동했을 뿐이다.이는 지방소멸 시대 도시재생이 자칫 지역 간 인구를 빼앗는 '제로섬 게임'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더 큰 문제는 물리적 환경 개선이 지역경제를 회복시키지는 못한다는 점이다.도시는 건물이 아니라 일자리와 산업, 사람이 유지한다. 아무리 화려한 문화시설과 창업공간을 만들어도 안정적인 일자리와 민간 투자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지역경제는 살아날 수 없다.실제로 상당수 도시재생사업은 눈에 보이는 시설 조성에 집중하면서 정작 지속 가능한 산업 기반을 만드는 데는 한계를 드러냈다. 공공시설은 준공됐지만 이용자는 부족하고, 운영비는 계속 늘어난다. 국비 지원이 종료되면 유지관리 비용은 고스란히 지방정부의 부담으로 남는다.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자치단체일수록 이러한 부담은 더욱 심각하다. 결국 시민의 세금으로 적자를 메우는 구조가 반복되고, 새로운 재생사업을 추진할 여력도 줄어든다.젠트리피케이션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공공투자로 지역 가치가 상승하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오랫동안 지역을 지켜온 영세 상인과 원주민이 밀려나는 사례도 나타난다. 도시를 살리기 위한 정책이 오히려 기존 공동체를 해체하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물론 도시재생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역사와 문화자산을 보존하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은 여전히 필요하다. 다만 모든 쇠퇴 지역을 과거의 규모로 되돌릴 수 있다는 전제는 현실적이지 않다.이제는 도시를 '어떻게 다시 키울 것인가'보다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유지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그 대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스마트 축소(Smart Shrinkage)' 전략이다.스마트 축소는 도시의 쇠퇴를 실패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구 감소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 변화에 맞춰 도시를 효율적으로 재편하는 정책이다. 무리한 확장을 멈추고 의료·교육·행정·상업 등 핵심 기능을 생활권 중심으로 집중시켜 시민의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둔다.산발적으로 퍼져 있는 주거지는 점진적으로 압축하고, 관리가 어려운 외곽의 빈집과 폐건물은 무리하게 활용 방안을 찾기보다 철거와 자연 복원을 병행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이는 도시 관리비용을 줄이고 한정된 재정을 꼭 필요한 곳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무엇보다 앞으로의 도시재생은 '건물을 얼마나 지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실제로 살고 일하며 지역경제가 자립하고 있는가'를 성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 시설보다 사람과 산업을 중심에 두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도시계획의 본질은 화려한 랜드마크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한정된 재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해 주민들이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지금도 전국 곳곳에는 사람이 없는 벽화마을과 이용객이 부족한 문화시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사업 실패가 아니라 인구 감소 시대에도 여전히 성장 시대의 사고방식을 답습하고 있다는 경고일 수 있다.이제는 실현 가능성이 낮은 장밋빛 청사진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방소멸 시대의 도시정책은 성장의 환상을 좇기보다 축소를 관리하는 용기, 그리고 한정된 국가재정을 책임 있게 사용하는 현실적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것이 미래 세대에게 지속 가능한 국토를 물려주는 길이며,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도시계획의 방향이다.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